한살림대구소개

전사(前史)중심의 대구한살림생협 약사

흔히 유기농 직거래 협동조합으로 알고 있는 한살림은 원주의 재야 사상가 장일순 선생이 말년에 구상하고 기획한 생명사상에 따른 후학들의 구체적 실천이다. 선생의 족적이 말해주듯 밥상살림 공동체 한살림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목적으로 시작했다.

하나는 진정한 유기농을 중심으로 새로운 밥상공동체를 만들어 직접 민주주의 즉 민초들이 직접 주도하는 민주주의, 다시 말해 생태적 지속이 가능한 자급 자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의 목적은 이 밥상 공동체의 기본 전제인 우리 농업을 외국 농산물의 수입 개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대구한살림의 출범 목적과 원칙

대구 한살림의 목적도 원주 장일순 선생의 뜻을 따라 건강한 밥상 공동체를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살리는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농업을 지키고 살려가야 하지만 우리 농업이라고 모두 살림의 농업은 아니다. 우리 농업 역시 화학비료, 농약, 기계 등 자본에 전적으로 종속된 국제분업농의 하나로 이미 죽임의 농업이 되고 있었다.

건강한 밥상 공동체는 살림의 농업을 지키고 되살림과 동시에 무엇보다 생명 사상적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원칙이 생태적인 지속가능성이다. 살림의 농업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쓰는 유기농을 기본으로 삼는 이유는 우리 당대의 보신을 위해서일 뿐 아니라 바로 우리 후대를 위한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안전한 먹거리 환경을 자손만대에 물려주려면 먹거리 환경을 자본에 의해 자원으로 독점 파괴하도록 두지 말고 내 몸처럼 아껴 쓰고 나머지는 나누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사람에게 가장 고귀한 것은 자본에 독점된 죽은 빌딩이 아니라 살아있는 땅과 그 산물인 유기농이다. 유기농이 비싼 것은 생산 농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한한 공용인 지구, 아니 나 자신과 후대를 위해서다.

대구한살림의 두 번째 원칙은 강자나 인간에 의한 재화와 자연의 독점과 경쟁 대신 만 생명 평등의 민주적 공생성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오직 깨어 있는 영혼들의 부단한 활동(운동)으로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한살림이 일단 제도권 안에서 현금을 매개 수단으로 하는 유기농 직거래 사업을 하다 보니 그 제도적 틀로서 ‘협동조합’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 수만큼 권리를 행사하는 1인 대표주의가 아니라 협동조합은 형식적으로는 출자좌수에 관계없이 1인1표의 평등 민주주의다.

세 번째 원칙은 지역 또는 공동체 단위에서의 자급자족 자치다. 생태적으로 지속이 가능하고 모든 생명이 호혜적이고 민주적인 공생사회는 지금과 같이 산업적 대량생산에 종속된 소비사회로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오직 생산과 소비가 일치된 소규모 공동체의 자급자족 생산소비만이 지속적 공생과 스스로 주인 되는 자치 민주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또 이 같은 진정한 민주사회(내가 주인으로 자급 자치하는 사회)만이 우리의 지속가능하고 공생적인 건강한 밥상을 담보해 준다.

 

지역 자급자치적으로 출발했던 대구한살림

대구도 위와 같은 목적과 원칙에 따라 1990년 1월 11일에 한살림대구준비모임을 거쳐 1월 16일에는 대구한살림생활소비자협동조합 발기인 총회와 2월 25일에는 대구한살림생협 창립준비위를 연달아 가졌다.

4월 29일에는 70여명 회원들의 출자금으로 임의조합 대구 한살림생협 창립총회를 당시 채소 생산회원이었던 경남 창녕군 계성면 전평의 김영운 동네에서 가졌다. 대구보다 앞서 창립한 다른 지역 한살림에서는 출자금을 거의 3만 원 이상으로 했는데 대구는 5만 원 이상으로 했다. 그 중에는 당시 영남대의 김종철 교수를 필두로 성삼경, 권이구, 장현갑, 정지창 교수, 장현기 사과생산자 등이 일백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쾌척해 그 힘든 한살림 실무 일에 말려들기를 계속 주저하고 있던 필자의 결단을 압박하기도 했었다. 이래서 초기 대구 한살림은 회원 수에 비해 출자금이 꽤 많은 편이었고, 회원들의 의식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타 지역과 단체들이 부러워했고, 따라서 전망도 낙관적이었다.

회원 가입 규정도 한 동네나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5가구 이상 공동체를 미리 만들어 그 공동체 단위로만 가입 시켰다. 처음부터 철저히 마을 또는 지역공동체 지향적이었다.

대구 한살림은 농촌 공동체의 기반 없이 도시에서 소비자 중심의 유기농 장사에 매몰되어 있는 다른 생협과는 좀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농촌의 유기농 공동체 없는 도시의 유기농 직거래는 허구가 아니면 사상누각이다. 우리는 협동조합대신 되돌려 받을 수 없는 회비갹출로 영농단체를 만들어 유기농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소농들을 위한 귀농교육과 젊은이들의 귀농 근거지를 제공하기 위한 농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1994년 3월 28일에는 지금까지 가입 시 5만 원 이상의 출자금 납입으로 운영하던 임의 협동조합 대신 회원 가입 규정을 가입회비 5만원과 연회비 1만 원 이상을 납부하여 그 회원 회비로 운영하는 사단법인 단체화하기로 했다. 창립 당시 조합원으로 가입한 기존 회원들의 출자금은 단체의 회비로 전환하도록 권유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되돌려주었다.

1994년 11월에는 농수산부로부터 사단법인 공생농두레·대구한살림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인 1995년 11월에는 그 동안 모은 회비 전액을 모두 투입하여 경남 창녕군 남지읍 수개리에 8천여 평의 농지를 구입하고, ‘공생농두레’ 농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림수산부 산하 사단법인으로는 구입 농지를 귀속시킬 수 없어 1996년 1월 5일에 다시 영농단체인 농업회사법인 대구한살림(공생농두레)을 별도로 설립하여 위의 농지를 귀속시켰다.

귀농교육과 귀농 근거지로서의 공생농두레 농장에 대한 초기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회원들의 관심도 높았고,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이 농장에 교육이나 입주를 거쳐 귀농으로 정착을 하거나 도시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들의 농장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끊어지고 실지로 농장에서 자급자족적 공동체 농업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체험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대구한살림의 조직형태 변화

외환위기 뒤인 1998년이 되자 외환위기 해법으로 IMF의 이른바 구조 조정 강풍이 우리에게도 덮쳐 왔다. 이 구조조정정책을 충실히 추종한 김대중 정부 농림부의 담당 관료가 사단법인공생농두레의 저조한 유기농 직거래 실적을 보고 사업 대신 ‘국가인정단체라고 나라 팔아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모멸적인 힐난을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즉각 해산 절차를 밟아 1998년 9월10일에 사단법인을 해산했다. 1990년 창립 이후 10년 동안 깃들었던 대구 동구 신천4동 488-42번지의 사무실 겸 창고를 집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으나 당시의 재정으로는 이사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록자가 사는 신천동의 아파트를 팔고 통장까지 털어 달서구 송현동 84-3번지의 작은 상가 주택을 사서 1998년 10월 18일 이전했다.

2000년대 들어 쌀 수입 개방이 확대되고 회원들의 쌀 소비도 줄어 들어갔다. 이를 타개하고 유기 쌀 홍보를 위해 2002년 10월 7일에는 이사 및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어 가입 때 내는 회비 5만 원 이상을 1만원으로 내리는 대신 유기농 쌀 1가마 값 30만 원 이상을 선납하고 그 값만큼 쌀 소비가 끝나면 다시 쌀값 30만원을 선납하도록 회원 가입 규정을 개정했다.

이 규정은 회원들의 쌀 소비량을 높이는 데는 긍정적이었지만 30만 원 이상의 선납금이 부담이 되어 회원 가입은 저조해졌다. 이 밖에도 다른 지역 한살림들과 회원 가입 규정이 달라 타 지역과의 전·출입 때도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서울 사단법인 한 살림으로 부터 대구도 가입규정을 회비대신 자기들처럼 3만 원 이상 출자금으로 바꾸고 그 출자금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새로 만들라는 권고와 압력이 계속 있었다.

이 압력을 계속 거부할 수 없어 2004년 대구한살림 총회에서는 쌀 선납금 규정을 폐지하고 농업회사법인 대구한살림과는 별도로 타 지역처럼 가입비 1만원과 출자금 3만 원 이상을 내는 협동조합을 재 창립했다. 조직형태는 협동조합으로 재 창립했지만 생태적 원칙에 따라 고기와 생선 등을 배제한 1차 농산물 중심의 공급만 했던 대구한살림은 고사 위기에 몰렸다. 2006년 5월 28일 송현동의 사무실을 남구 대명9동 447-8번지로 옮겼으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원칙적인 지역 독자 물류로는 더 이상의 생존이 불가능해 하는 수 없이 2008년 1월부터는 서울의 한살림사업연합 물류에 의존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그 연합 물류로 신매동에 시지신매매장을 개장하고 2009년에는 대구한살림 관할인 경북지역까지 직접공급을 하기로 하고, 우선 구미 지역부터 시작했다.

2010년 3월 10일에는 2004년부터 운영해 온 임의조합을 생협법에 따른 제도권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 위해 ‘한살림대구소비자생활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경북북부지역 한살림회원들의 요청으로 2011년 3월2일부터는 영주, 안동에도 직접 공급하여 경북북부 한살림 출범을 지원했다.

 

 

한살림은 생명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모든 생명이 한집 살림하듯 더불어 살고, 함께살려낸다’는 뜻입니다.

한살림대구생협은 정직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 먹거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살림대구는 구성원들의 출자금에 기초하여 현재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일차적으로 하는 사업은 우리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 친환경(유기농, 무농약, 저농약)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구성원들에게 직거래 하는 일입니다.

각종 수입농산물과 유해식품이 범람하는 가운데서 건강한 밥상을 지키자면 먼저 우리의 농촌이 건재해야 합니다. 지금 해체위기에 몰려있는 우리 농업과 농민을 되살리고, 개발 이익 앞에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땅과 물을 지켜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도시와 농촌, 사람과 동식물들이 모두 한 생명, ‘한살림’이라는 인식아래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상생의 길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지금 전 지구적으로 에너지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그리고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며 아끼고 절약하는 정신으로 미래에 대비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안으로 한살림의 사업 목표는 지역적인 자급과 자치를 촉진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한살림 공동체’를 지향하는 데 두고자 합니다.

한살림대구는 한살림 이념을 지역적으로 나누어 실천하고자 1990년 1월에 창립하였고 2014년 말 기준 회원 수는 약 4천5백명 정도입니다.

 

한살림은 이런 일을 합니다


밥상살림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이웃과 나눕니다.

  • 생산자·소비자 직거래를 통한 먹을거리 나눔
  • 건강한 밥상차림을 위한 교육·홍보 활동
  • 먹을거리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참여 활동

 

농업살림

농촌 회원들은 생명이 살아 있는 농업을 실천하며 우리 농업과 농촌 공동체가 지속되게 힘쓰고 도시 회원들은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농촌 회원들을 응원하며 생명 농업을 위해 함께 나아갑니다.

  • 친환경 유기농산물 등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
  • 생태적인 지역농업 유지·육성하기 위한 기금 운영
  • 도농 공동체를 위한 교류와 협력 활동

 

생명살림

한살림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생명세상을 위해 노력합니다.

  • 생명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연구·출판
  • 자연과 하나 되어 이웃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기 위한 생활실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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